최정서 바비디 대표의 지난 20년은 파란만장했다. 앞선 10년은 한국에서, 뒤에 10년은 미국에서 활동했다. 한국에서 직원으로 영업과 공장 관리를 하고, 본인 사업도 세 차례 했다. 미국에서는 이베이와 페이스북(현 메타)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그리고 지난해 ‘ 바비디’를 창업하면서 창업자로 다시 돌아왔다. 바비디는 최정서 대표와 나이언틱 출신 배수현 CTO가 2021년 6월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바비디는 AI 테스팅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편견을 글로벌 커뮤니티를 통해 바로잡는 것이 핵심이다. AI는 산업 전반에 걸쳐 퍼져있지만, 빠른 성장에만 집중한 나머지 AI 모델이 가지고 있는 편향성과 그로 인한 폐해를 미리 알고 예방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미비했다. 잘못된 AI 모델은 개발 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받는 소비자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바비디는 AI 회사들에게 자체 글로벌 커뮤니티에서 빠르게 모델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커뮤니티 유저들이 AI 모델이 잘 작동하지 않는 케이스를 찾고, 고객은 유저들이 찾은 작동하지 않는 케이스(Edge Case)를 활용해 빠르게 모델을 재학습할 수 있다. 고객 모델은 API를 통해 커뮤니티와 연결돼 보안을 유지한다. 시험에서 틀린 부분을 확인할 때 더 많은 양의 참고서를 다시 공부하는 대신 오답노트를 활용해 모르는 부분을 빠르게 보완해 나가는 방식이다.
바비디는 사업 가능성을 인정받아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로 불리우는 올해 와이컴비네이터, 현대자동차 제로원, 롯데벤처스 등에서 시드 라운드에서는 기록적인 75억 원 규모 투자유치를 했다. 최정서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서 10년 간 본인 사업을 세 차례했는데 두 번은 잘 안 됐어요.
사회생활 시작을 3년 정도 스타트업에서 했고, 이후 아버지 회사 일을 돕다가 시장 기회를 찾게 됐어요. 한국 내수시장은 순환이 굉장히 빠르고 보통 마진이 30-40% 정도 됐어요. 당시 유통업체들이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것이 유행이기도 했고, 패스트패션이 붐이여서 ODM을 하면 승산이 있겠다 싶더라고요. 아버지 회사 회의실에 전시되어 있던 8-90년 대 잘 나가던 수출 의류 100벌을 다 팔아보자 싶었죠. 아반떼 자가용에 옷을 꽉 채워 넣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영업을 했어요. 내셔널브랜드를 만들고 싶어하는 회사들은 모두 다 찾아다닌 것 같아요. 먹고 살아야 하니 동시에 외주 홈페이지를 만들고 관리하는 것도 병행했고요. 그런데 3개월 간 외주 홈페이지 관련 일들은 잘 되는데, 옷은 잘 안되더라고요. 행거 분해하고 조립하는 실력만 늘었어요. (웃음)
그러던 어느날 큰 업체 중에 한 곳이 저희에게 츄리닝도 취급하냐고 문의하길래 당연히 된다고 했죠. 사실 스키복, 점퍼, 오리털 파카와 같은 옷들만 하고 있었는데, 안 된다고 할 수 없더라고요. 가지고 있는 옷이 없어서 품평회에 보여줄 옷을 동대문에서 사입하기로 했어요. 옷을 빌려와서 보여주고 확정된 다음에 대량 생산을 하면 되니까요. 그래서 동대문에 차려입고 갔는데 계속 거절당했어요. 진짜 프로들은 모두 편하게 입고 다니는데 넥타이 매고 나갔으니 초짜인 것이 티가 났던 거죠. (웃음) 시행착오를 거쳐 옷을 빌려 품평회에 갔는데 잘 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모르는 분야 옷은 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죠. 그런데 이후에 같은 회사에서 등산복 하냐고 연락이 왔어요. 사실 저희 등산복 안 했거든요. 앞서했던 다짐은 다 잊어버리고, 한다고 했죠. (웃음) 그런데 최종적으로 계약이 되고 3억 원정도 수익을 낼 수 있었어요.
이후 온라인 시장을 공략했어요. 온라인 쇼핑몰이 많은데 반해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곳은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네이버 지식인의 패션 버전을 론칭했죠. 쇼핑몰에 근무하는 패션 전문가, 스타일리스트 등이 이용자가 원하는 코디를 해주는 방식이었어요. 패션 미디어, 컨설턴트 협회 등과 독점계약도 맺고, 유명 온라인 쇼핑몰, 카페, 미용실 등 500여 개를 입점시키며 나름 규모의 생태계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수수료 정책을 잘못 세웠어요. 대부분의 쇼핑몰이 어디에 입점하면 미리 수수료나 기타 비용을 내는데, 저희는 물건이 팔릴 때 수수료를 받기로 했어요. 어느날 보니 처음과는 다르게 입점한 업체들이 사진 업데이트를 잘 안 하더라고요. 수수료를 낸 포털 등에만 사진을 올리고 저희쪽은 상품관리를 안 하더라고요. 시간은 24시간으로 한정되어 있고, 돈을 낸 곳을 관리하다 보니 저희 사이트가 뒷전이 된거죠.
그래서 판매하는 사람들이 직접 사진을 올리지 않아도 연결되는 방법을 고민하다 쇼핑 장바구니를 공유하는 두번째 사업을 구상하게 됐어요. 핀터레스트 전신 형태였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아요. 당시 국내 온라인 소비자들은 평균 5개의 쇼핑몰에 제품을 각각 넣어 놓고 있었어요. 구매를 하기 위해 다섯 번의 로그인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걸 한꺼번에 모아 놓으면 불편함이 해소될 거라 생각했죠. ‘쇼핑퍼즐’이란 서비스였는데, 그것도 결과가 좋지는 않았어요.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안면마비가 왔고요.
앞에 사업은 잘 안됐지만, 세 번째 창업은 매각까지 갔어요.
두 번 망한 뒤에 사업을 할 팔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외국 회사 취업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친구 소개로 맛있는 전라도 돼지고기를 알게 됐어요. 조사를 해보니 영광에 있는 친환경 농장에서 키우는 거였어요. 하루에 세 번 샤워를 시키며 사육하고 있었는데, 저보다 더 깨끗하게 자라고 있더라고요. (웃음) 우리나라의 돼지고기 유통은 굉장히 복잡하고, 종사자들은 마케팅이나 온라인을 모르고 있었어요. 좋은 고기가 있는데, 도시 사람들에게는 접근통로가 없었던 거죠. 농가를 모아서 어느 정도 규모를 만들고 복잡한 공급체인을 온라인으로 옮겨 놓으면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았어요. 그렇게 돼지고기 유통 사업을 했고 굉장히 재미있게 일했어요. 그 사업을 나중에 매각했죠.
앞선 사업이 잘 안됐던 근본적인 이유는 뭐였다고 생각하세요.
의미있는 임팩트를 만들지 못 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제가 했던 쇼핑몰 사업이 생태계에 그 어떠한 가치도 주지 못 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죠. 그저 수수료를 낮게 해주고, 나중에 줘도 되는 시스템이 모두에게 최고라는 착각을 했죠. 그곳에서 구멍이 생기니 전체가 무너져 내리더라고요. 그뒤로 생태계 구성원이 누구이고 이해 당사자들이 누군인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그게 사업을 하면서 가장 큰 배움 인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번째 창업때까지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어요. 결국 사업은 사람이 모여서 하는 건데, 왜 혼자서 고독하게 갔을까 싶어요. 위기를 겪고 힘든 시기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제가 아니라 늘 같이 일하던 팀원이었어요. 돼지 사업을 할 때 앞다리와 뒷다리는 인기가 없었어요. 저희 직원이 지육을 받아오는 업체에 가서 고민을 털어 놓으니까, 소시지 만드는 기계를 빌려주셨어요. 그걸로 청양고추 등을 넣어 다양한 수제소세지를 만들었죠. 그게 마진이 50%-60%씩 남는 효자 상품이 됐어요. 식당에 납품하는 한편 고아원에 기부도 했죠. 이렇게 순간순간 돌파구는 제가 아니라 직원들이 계기를 만들어줬어요.
사업 엑시트 후 미국으로 MBA를 하러 갔어요.
MBA는 예전부터 고려하고 있었어요. GMAT(경영대학원 입학시험)도 미리 했죠. 다만 언제일지 기약이 없었는데, 두 번째 사업을 실패하고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제가 했던 두 번째 사업과 똑같은 아이템들이 미국에도 있었는데, 우리 제품이 훨씬 더 좋았다고 자평해요. 그런데 저희는 망했고, 미국 회사들은 수백억 원에 매각되더라고요. 이유를 찾다보니 실리콘밸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MBA는 뭔가 배운다는 목적보단 미국 정착의 수단이었어요. 미국회사에 취업을 위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MBA를 마치고 우여곡절 끝에 이베이에 들어갔고, 이후에 페이스북에서 근무했죠. 그렇게 미국에서 10년(최 대표의 실리콘밸리 경험을 정리한 기사)을 보낸 뒤 2021년 실리콘밸리에서 바비디 창업을 했고요.
오래된 친구 배수현 CTO와 공동창업을 했어요. 친한 친구와 사업을 함께한다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부담도 됐을 것 같아요.
지난 세 번의 창업에서 너무 외로웠어요.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고요. 또 통계적으로 공동창업자가 있을 때 성공확률이 더 높다고도 하잖아요. 배 CTO는 술 친구이자 매번 창업이야기를 하던 동료에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런 사업 할거야” 라고 말했더니 “같이 하자”고 하더라고요. 입으로는 “너 미쳤냐?” 라고 했지만 내심 기뻤어요.
페이스북 시절 ‘온덱’이라는 파트타임 엑셀러레이터 활동을 했는데, 거기에 창업자에 하는 50개의 앙케이트 질문이 있었어요. 배 CTO와 이 사업을 준비하면서 매일 미팅을 했는데, 그때마다 그 질문을 주고 받았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사업 동반자로서의 배수현을 알게 됐는데, 새삼 우리가 정말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죠. (웃음) 창업을 준비하면서 서로 어떤 부분이 다르고 어떤 부분이 비슷한 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맞췄던 것 같아요. 배 CTO는 바비디에서도 큰역할을 하지만 제 마음의 집같은 친구예요. 일하다 보면 누구나 말 못할 고민들이 있는데 그걸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죠. 고민을 이야기 한 것만으로도 굉장히 많은 부분이 해소돼요. 클리셰지만, 배 CTO가 없었으면 아마 이 사업을 못했을 거예요.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을 한 외국인이에요.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외국인이기에 어렵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아직 업력이 길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했고 기술 기업이어서 더더욱 못 느꼈을 수도 있어요. 오히려 외국인이어서 좋았던 것은 있네요. 예를 들어 미국 VC들과 1:1 면담을 할 수 있었고, 아시안-아메리칸 커뮤니티나 코리안-아메리칸 커뮤니티 등 외국인을 위한 커뮤니티를 통해 보너스 기회를 얻을 수 있었죠.
바비디의 시작은 실리콘밸리지만, 최근 한국으로 근거지를 옮겼어요.
우리 사업의 가장 큰 시장이 미국이기에 자연스럽게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시작했어요. 한국은 AI 관련 정부 지원금이 풍부하고 좋은 인재들이 많아요. 여러 요인을 살펴보니 미국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처음에는 한국에 기본적인 엔지니어링 근거지만 두고 미국에서 팀빌딩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YC(와이콤비네이터)에 선정된 다음에 생각을 바꿨어요. YC 파트너가 “매일 합숙을 해도 모자를 판에 작은 스타트업이 한국, 미국으로 갈라져 있는 건 문제가 있다. 고민할 것 없이 한국으로 다 몰아야 한다. PMF(프로덕트 마켓 핏)만 찾으면 글로벌로 해도 된다. 어차피 제품은 글로벌 이니까.”라며 “스타트업이 어떻게 해야 성공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떻게 하면 망하는 지는 잘 안다. 지금처럼 하면 너흰 망한다” 라고 하더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고 한국에 거점을 만들기로 했어요. 지난 10년 동안 큰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마인드가 큰 회사 사람처럼 바뀐 부분이 있었더라고요.
미국과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어떤 부분이 다르다고 생각하세요.
가장 큰 차이는 국가 지원인 것 같아요. 미국도 지원금이 있지만 한국의 지원 밀도가 훨씬 두터워요. 대표적으로 중기부 ‘팁스(TIPS)’가 있고, 청년 일자리 지원사업 등도 많아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기에 스타트업하기에 정말 좋은 환경이라고 봐요. 해외 사업도 독하게 마음만 먹으면 한국에서 못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VC를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얘기가 있는데 한국이 실리콘밸리보다 더 강하다는 느낌을 받아요. 저희가 투가 받을 때 VC분들께 “저희를 위해서 무엇을 해 주실 수 이나요?”라고 물은 적이 있는데, “소주 마셔 드릴께요.” 라고 답한 부분에서 확 끌렸어요. 제가 미국 VC와 술 마시면서 마음을 털어놓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그런 소주 한잔이 저같은 창업자의 멘탈케어에 아주 크게 도움이 됩니다. 물론 일장일단이 있겠지만요.
한국에서의 창업 경험이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할 때 도움이 됐나요?
지나온 것 중에 버릴 건 하나도 없다는 마인드에요. 한국에서의 스타트업 경험은 사업에도 도움이 됐지만, 미국에서 PM으로 일할 때도 긍정적인 바탕이 됐어요. 실리콘밸리 IT기업은 적자생존이기에 도태되는 사람들은 금방 회사에서 나가야 해요. 누가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이끌어 주는 것도 없어요. 그런데 창업을 경험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던 상황에서 뭔가를 해본 경험이 있기에 어떻게 하든 살아남는 서바이벌 스킬이 내재되어 있어요. 저도 그랬고요.
반면에 이번 사업을 시작하면서는 큰 기업에 있었다는 것을 잊으려고 노력해요. 10년 동안 큰 회사에만 있었더니 큰 회사 사람처럼 마인드셋이 되어 있더라고요. 모든 것을 잊자고 다짐하며 처음이라는 생각으로 사업을 하고 있어요.
다른 얘기일 수 있는데, 실리콘밸리에서 살아남으려면 영어를 얼마나 잘 해야 하나요.
제가 영어 실력이 아주 좋지는 않은데, 사는데 큰 지장은 없었어요. (웃음) 의사소통에서 말 자체가 가지는 포지션은 크지 않다고 해요. 성량, 눈빛, 손짓과 같은 것들이 의사소통에 훨씬 더 크게 작용을 한다죠. 발음이 실력의 척도라면 전 못 하는 수준이에요. 페이스북 벽에 걸려있는 만트라 중에 “너의 영어 액센트는 네가 또 다른 언어를 할 수 있다는 증거”라고 쓰여진 게 있어요. 그걸 보고 “나는 최소한 2개 국어를 하는 사람이야.” 라는 자신감을 가졌어요. 실제로 액센트를 신경쓰지 않으면서 영어에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정말 중요한 것은 발음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잖아요. 실력이 있고 진심이 있으면 말은 수단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진심이나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포인트를 제대로 전하는 정도만 가능하다면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제대로 의사소통을 전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실력이 필요할텐데요.
노력은 많이했죠. 영어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미국에 있는 동안 영어로 태권도를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2시간 분량의 내용을 모두 외워가서 했어요. 회사에서 프리젠테이션 할 때도 모두 외워서 준비해 갔죠. 진짜 어려운 것은 회의 시간이었어요. PM 역할을 할 때 대화 중간에 끼어들어 조정을 해야하는 역할이 정말 어려웠어요. 그래서 소수 정예로 각개 격파를 하는 형식으로 일이 되게끔 진행했어요. 큰 미팅을 하면 누구를 설득하는 자리가 아니라 이미 공유된 내용을 공표하는 자리처럼 만들었죠. 그렇게 하면 영어를 좀 못해도 뭔가 일을 잘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거든요. (웃음) 미팅 중에 잘 듣고, 중간 중간 썸머리 해주고, 포인트 지적해주는 것이 미국에서 커뮤니케이션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거 같더라고요.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사실 낮은 레벨의 팁이고, 진짜는 실력이 있어야겠죠. 그래서 평상시 글도 많이 써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을 해 놓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바비디는 자체 커뮤니티에서 AI 모델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데요. 이 서비스가 왜 필요한 건가요?
AI 서비스가 의외로 잘 안되는 경우가 많아요. 일례로, 작년에 페이스북이 흑인을 영장류라고 표시하는 AI 때문에 곤욕을 치렀고, 트위터는 백인 여성 편향적인 AI 알고리즘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어요. 이런 문제는 데이터가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AI 개발자가 무엇을 모르는지 몰라서 생기는 이슈예요. 만약에 이용자 발에 신발을 가상으로 신겨주는 주는 AI가 있다고 한다면, 이것을 개발하는 사람은 각종 발 모양 데이터를 찾을 거예요. 여러 각도로 발을 찍고, 맨발인지 양말을 신었는지 등도 검토하겠죠. 그리고 흑인인지, 백인인지, 동양인인지, 모래 묻은 발인지, 긴 발인지 등등 여러가지 모양의 데이터를 모으겠죠. 그렇게 몇 만장을 모아서 테스트해 보면 잘 될 거예요. 그렇게 세상에 내 놓았는데 발가락이 4개만 있는 사람은 인식이 안돼요. 개발자가 생각도 못한 부분이고 자신도 인지하지 못 한 편향성 때문에 오류가 생기는 거죠. 이러한 것들이 AI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되어가고 있어요. 이걸 다룬 ‘Coded Bias(알고리즘의 편견)’ 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나올 정도니까요.
저희가 하는 일은 이러한 문제를 글로벌 커뮤니티와 같이 푸는 거예요. AI의 구멍을 커뮤니티한테 찾아주는 거죠. 저희 커뮤니티 유저들이 AI 모델이 잘 작동하지 않는 케이스를 찾고, 기업 고객은 유저들이 찾은 ‘작동하지 않는 케이스(Edge Case)’를 활용해 빠르게 AI 모델을 재학습할 수 있어요. 시험에서 틀린 부분을 확인할 때 더 많은 양의 참고서를 다시 공부하는 대신 오답노트를 활용해 모르는 부분을 빠르게 보완해 나가는 방식이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커뮤니티 유저들은 AI 모델의 약점을 발견하는 챌린지에 참여해서 수익도 올릴 수 있어요. 커뮤니티 유저들은 AI 모델의 약점을 발견하는 챌린지에 참여함으로써 시간 당 10~20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어요.
이 서비스가 세상에 주는 임펙트는 뭔가요. 그리고 대표로서 가진 목표는 뭔가요?
바비디의 최종 목표와 제 목표는 같아요. AI가 잘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서 편견(Bias)을 없애 주는 것이 사업 목표입니다. AI가 실제로 세상에 이로울 수 있도록 역할을 하는 거죠. 아울러 소득창출 창구가 넓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기회의 통로를 만들어 그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현재 바비디는 글로벌 커뮤니티를 통하여 AI의 유효성이 더 증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또한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분들에게 경제적인 도움도 되고 있어요.
필리핀, 인도, 남아프라카공화국 등 굉장히 많은 나라 사람들이 참여를 하고 있는데요. 저희 첫 VIP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는 20대 후반 흑인 여성이에요. 그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메시지가 왔는데, 바비디가 물심 양면으로 너무 많이 도움이 되었다며 감사를 전했어요. 그 메시지를 받고 나서 감격스럽고 이 일을 오래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필리핀의 어떤 분은 아내가 임신해서 매일 업무가 끝나면 바비디 커뮤니티에 참여한다고 해요. 농담이겠지만, 아이 이름을 바비디로 짓기로 했다는 거예요. (웃음) 얼마 전에 실시한 챌린지는 녹음을 해서 데이터를 기록형태로 바꾸는 거였어요. 보통 녹음은 기록이 많지 않은데 미국에 거주하는 한 유저가 녹음을 엄청 많이 한 것이 보였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그 분이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말이 많다는 것 때문에 자주 지적받는다고 해요. 하지만 바비디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시원하게 수다를 떨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여러 사례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사지가 불편한 장애인도 손가락만으로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요. 장애인도 자폐증을 가진 사람도 스스로 일해 소득을 내며 AI를 가르쳐 줄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궁극적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투표하듯이 AI 발전에 기여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만약에 저희가 그 토대를 만들 수 있다면 굉장히 큰 의미가 있을 겁니다.
여러 실패가 지금의 대표님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힘들 때 어떻게 극복했나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면요.
밝은 성격이어서 실패를 해도 겉으로는 티가 잘 나지 않았아요. 그래서인지 눈에 안 보이는 곳에서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얻어 맞아서 멍이 생기면 조심하게 되는데, 밝은 성격으로 가려져서 저도 잘 몰랐던 부분이에요. 그럴때 자기만의 무언가를 찾으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우선 운동을 굉장히 열심히 했어요. 페이스북을 다닐 때 배고픈 아이들을 돕는 ‘밀포워드’라는 비영리 법인을 세웠어요. 누군가를 돕는 활동이었지만 저 스스로를 구하는 거였어요. 전쟁 PTSD를 겪는 사람들이 어디가서 자원봉사를 많이 한다고 해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서 자신이 쓸모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극복을 한다죠.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터닝포인트는 스스로가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변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거였어요. 그게 첫번째 스텝이었고 가장 도움이 많이 됐어요.
끝으로 하고 싶은 말, 전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요?
바비디와 함께해줄 팀원을 전방위적으로 찾고 있어요. 스타트업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문제 해결을 하는 지 지근 거리에서 겪어 보실 수 있어요. 미국 진출을 병행하기에 글로벌 무대에서 일해보고 싶은 분에게도 도움이 될 거예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런 토양 위에 발을 딛고 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을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 팀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큰 가치는 좋은 사람들과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회사 CEO로써 그걸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원문링크 | https://platum.kr/archives/196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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