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래 Bhs Law, LLP 변호사(www.bhslawllp.com)

미국은 소송 및 분쟁이 특히나 상법 관련으로는 끊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이다. 웬만한 사업이나 회사를 운영하는 경우 계속되는 분쟁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중에서도 노사 관계에서 벌어지는 분쟁 및 소송은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사업장이나 회사에서 피하기 어려운 분야로, 이에 대한 계속적인 대비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노사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법적 분쟁이 소송으로 이어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미국법에서는 분쟁 발생에 선행한 중재 계약(arbitration agreement)의 체결을 허용하고 있다. 중재 계약은 간단히 말해 분쟁이 발생했을 때 법원으로 가지 않고 중재자(arbitrator)의 결정에 따르기로 하는 당사자 간의 합의를 지칭한다. 소송을 통한 해결과 중재를 통한 해결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겠는데, 일반적으로 중재 계약은 소송에 비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고용주가 입사 조건의 하나로 또는 별도의 절차를 통해 사내 정책(policy)으로 도입하고 있다.

연방중재법(Federal Arbitration Act 또는 FAA)에서는 중재를 통한 분쟁의 해결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으며, 중재 계약을 시행하는 데 걸림이 되는 주법에 대해서는 법률선점주의 원리(preemption)를 적용하여 규제하고 있다. 한 예로 2022년 6월 Viking River Cruises, Inc. v. Moriana에서 미국연방대법원(U.S. Supreme Court)은 중재 계약의 범위에 PAGA claims[1]을 포함시킬 수 없다고 판시한 캘리포니아대법원의 결정이 FAA에 배치된다고 판단하여 이를 뒤집었다. 이로써, 캘리포니아 고용주들은 직원 개개인의 PAGA claims에 대해 법원을 통하지 않고 중재로 해결하도록 하는 계약을 사전에 체결할 수 있다. 또한 지난달(2023년 2월) Chamber of Commerce v. Bonta에서 제9순회연방항소법원(U.S. Court of Appeals for the Ninth Circuit)은 고용의 조건으로 고용주가 직원들에게 중재 계약의 체결을 요청하는 것을 엄격히 규제한 캘리포니아주 입법안(Assembly Bill 51)이 FAA에 합치하지 않으므로 무효라고 결정하였는데, 이때 적용된 법리도 바로 법률선점주의 원리이다.

하지만 단순히 중재 계약을 체결했다고 해서 법적 분쟁이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했다고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한 직원이 회사가 자신의 휴게 시간을 제대로 보장해주지 않았고 프리미엄 페이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가정해보자. 회사는 직원이 입사할 때 서명한 중재 계약서를 근거로 법원에 해당 분쟁을 중재로 해결하라는 명령을 발급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이때 직원이 중재 계약에 서명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계약서의 내용이 자신에게 불공평하게 작성되었기 때문에 집행될 수 없다고 주장할 경우, 해당 사안은 법원을 통해 해결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중재를 통해 해결하게 될 것인가? 해당 예시에서 직원은 실질적 분쟁(법적 기준에 어긋난 휴게 시간 정책 및 프리미엄 페이의 미지급)과 별개로 중재의 적합성(arbitrability) 또는 집행 가능성(enforceability)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처럼 중재 계약의 집행에 앞서 제기될 수 있는 쟁점들을 관문 이슈(gateway issues)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대비가 미흡할 경우 중재 계약이 있더라도 법원 절차를 피하기 어렵다. 관문 이슈들은 일반 계약법에 속한 쟁점이므로 법원의 판단 영역에 해당된다고 본 다수의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재 계약에 이러한 관문 이슈들을 포괄하는 문구를 포함시키면, 즉 계약서상에 중재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지정한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 캘리포니아 주 법원의 판단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이다. Sanchez v. Western Pizza Enterprises, Inc.에서 주항소법원(California Court of Appeal)은 중재 계약의 범위에 '중재 계약의 적용과 해석에 관한 모든 분쟁(any dispute over the interpretation or application of this Arbitration Agreement)'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관문 이슈도 중재로 해결해야 한다는 고용주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계약서에 근거하여 발생하는 '모든 분쟁, 견해 차이, 또는 의견의 다툼(any disputes, differences or controversies arising under a contract)' 또는 '모든 사안들(all matters)'과 같이 중재의 범위를 더욱 폭넓게 지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재의 범위에 관문 이슈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 Ajamian v. CantorCO2e, L.P.의 사례도 있다.

이러한 관문 이슈들을 중재 계약의 범위에 포함시키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법적 기준에 맞는 위임 조항(delegation clause)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위임 조항이란 특정 사안의 처리, 결정, 또는 집행의 권한을 부여하는 계약서 상의 조항을 뜻한다. 따라서, 관문 이슈의 처리 및 집행 권한을 중재자에게 위임하는 별도의 조항을 통해 효과적으로 소송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 또한, AAA Rules 또는 JAMS Rules 등 중재 시 적용되는 준거 규칙을 계약상 명시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AAA Rules 또는 JAMS Rules에 위임 조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거 규칙의 명시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본 캘리포니아주법원의 판례도 있으므로 별도의 위임 조항을 갖추는 것과 병행할 것을 권고한다. 중재 계약 문구상 위임 조항의 해석을 모호하게 만들거나 위임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구가 있는지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현재 귀사의 중재계약서가 소송의 가능성을 제대로 차단하고 있는지, 또한 법적 기준에 맞는 위임 조항을 포함하고 있는지 확인할 것을 권고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중재 계약이 있음에도 결국 소송을 통해 관문 이슈를 해결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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