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정부 R&D 예산규모가 2조원이 넘어감에 따라, 연구데이터의 중요성과 가치가 제고되고 국가 차원에서 연구데이터 활용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정부과제 연구자에게 연구 데이터 관리 계획(DMP) 수립 시 소재연구데이터 플랫폼에 데이터 등록을 의무화 하고 있다. 다른 연구자에게 공유된 연구데이터의 활용 시 출처 표시, 위·변조 방지 등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가이드라인도 올해 제시된다. 대학에서도 DMP 기반으로 연구데이터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추세이다. 이에 따라 연구 데이터 관리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으며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활용한 솔루션에 대한 관심 또한 커지고 있다

사실 이 스타트업이 등장하기 전까지 ‘연구데이터관리계획’이 어떤 개념이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잘 몰랐다. ‘레드윗(ReDWit)‘ 이야기다. 국가차원에서 연구개발 사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실제로 연구데이터 관리 체계와 과정은 아날로그적이고 번거로움이 있었다. 레드윗에서 서비스하는 ‘구노’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쉽고 빠른 전자연구노트 서비스이다. 서면으로 작성된 기록을 사진만 찍으면 자동시점인증과 서명이 된다. 서면의 기록을AI를 활용해서 라벨링 및 검색기능을 도입하였고,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보안성과 신뢰성을 확보했다. 연구자는 사진으로 찍기만 하면 자동으로 정부과제의 필수 요건을 갖춘 전자연구노트로 변환되기에 유용할 수 밖에 없다.

레드윗은 공대(카이스트) 출신들이 모여 창업한 기업이다. 이 조직에서 가장 이채로운 사람은 회사를 리드하는 김지원 대표다. 김 대표는 대학원(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전까지 문과 계열 커리어를 추구하던 사람이다. 고등학생 시절 꿈꾸던 직업은 영화감독이었고 대학 진학도 문예창작과로 했다. 대학에서도 4년 내내 희곡을 쓰며 작가를 추구했다. 첫 사회생활도 방송국에서 했다. 하지만 몇 번의 우연에 가까운 개인 경험이 이어지며 창업자로 나서게 된다.

김지원 대표가 21일 132회 테헤란로 커피클럽 발표자로 나서 자신의 창업기를 공유했다. 이하 강연 정리.

레드윗은 무엇을 추구하는 기업인가

레드윗은 ‘과정을 증명하는 회사’다. 보통 결과에 많은 집중을 하지만, 우린 결과를 만들기 위한 과정의 노하우와 고민, 실패에 주목하고 있다. 이런 것을 잘 관리하고 인증해야 향후에 더 큰 가치로 활용될 수 있다고 믿는다. 첫 번째로 타겟하는 분야가 ‘연구 기록’이다.

연구노트를 블록체인에 기록하는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소한 이들이 많을텐데, 보통 연구원들은 국가과제같은 것을 진행하면 결과 보고서와 함께 어떤 과정으로 연구를 했는지 연구노트를 제출한다. 위변조가 되면 안되는 기록이기 때문에 아무거나 낸다고 해서 인정이 되지 않는다. 모든 페이지마다 작성자 본인이 쓴 것이 맞다는 서명을 해야 한다. 제3자가 그걸 인증하는 확인서명도 해 줘야 한다. 언제, 몇 시에 했다는 타임 스탬핑이 있어야 연구노트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형식이 까다롭기 때문에 일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연구원들이 모여서 기존에 썼던 수기를 다시 그 연구노트 형식으로 옮겨야 하는데, 시간을 굉장히 많이 소모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린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만드는 회사다. 기존에 자연스럽게 생성된 노트의 사진만 찍으면 연구노트 형식으로 만들어주고, 그걸 다 블록체인에서 관리를 하기 때문에 위변조 방지를 할 수 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작년에 시드투자 유치를 했고, 최근에 프리A 투자유치를 하면서 정식버전을 출시했다.

레드윗은 카이스트 창업프로그램 E*5의 우승팀이 주축이다.

그런 서사가 들어가니 ‘공대생들이 만든 공대 프로그램이다’라고 생각하는 듯 싶다. 나는 문과 출신이다. 대학 전까지 장진감독같은 영화감독이 꿈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우연한 기회에 장진감독을 만나 조언을 듣고 진학도 문예창작학과로 했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장진감독이 보내준 연극표가 계기가 되어 대학 4년 내내 희곡을 쓰며 작가를 목표로 했다. 그런데 내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학교 졸업 후 꿈에 접근하지 못 해 고민했다. 그러다 선배들이 방송쪽으로 많이 진출을 해 있는 것을 보고 나도 첫 커리어를 방송국으로 했다. 그런데 방송작가는 나에겐 험난한 세계였다. 평생 들을 욕을 거기서 다 들은듯 싶다. 인정을 받는 위치도 아니란 생각이 들어 대안도 없이 도망치듯이 나왔다.

창업을 배우러 대학원으로 갔다

다음을 고민하고 있을 때 출산을 마친 친언니의 연락을 받고 육아를 도우러 갔다. 이때 좀 놀랐던게 내가 아이를 너무 잘 본다는 거였다. 조카가 왜 우는지, 뭐가 필요한지, 어떻게 달래줘야 하는지를 느낌으로 알겠더라. 그래서 육아 관련 일을 해야 하나라는 진지한 고민까지 했다.

이 때 인생의 전환점을 한 번 맞이하게 된다. 소개로 만난 카이스트 공대생이 나한테 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사람과 나는 특정 이슈를 바라보는 시선 차이가 있었다. 내가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 그 사람은 기술적으로 할 수 있는 솔루션으로 답했다. 아이디어와 해결책이 있으니 어떻게 시작할지를 고민했다. 창업을 생각한 것이다. 그때 지인 세 명이 동시에 카이스트에 스타트업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알려줬다. 나한테 어울릴 것 같다고 했다. “아이템만 이야기하지 말고 거기 가서 진짜 배워보라”고 하더라. 문과출신이라 가능할까 싶었는데, 운좋게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가보니 실제로 창업을 배울 수 있었다. 창업을 해본 교수진이 가르쳤고, 이론보다는 실무에서 적용할 수 있는걸 많이 다뤄서 좋았다. 수업 외 개인적으로 가서 내가 궁금한 것을 많이 물어본듯 싶다. 그러면서 제대로 창업을 배울 수 있었다.

첫 창업을 하고 접었다.

동기들과 창업 프로젝트를 했다. 처음에는 반려동물 미용실 앱서비스를 만들려고 했다. 그걸 개발하고 있을때 어떤 투자사 관계자가 “펫분야에 블록체인 기술을 결합해 보면 어떠냐”고 조언을 해줬다. 블록체인이 뭔지도 잘 모를 때라 제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어 또 투자사 관계자가 “뷰티분야와 블록체인을 융합하면 어떻냐”는 제안을 해줬다. 이 즈음에는 블록체인에 대한 공부를 좀 한 상황이었고, 투자사에서 화장품 회사까지 연계를 해줘서 실제로 괜찮은 아이템이 나왔다. 화장품이 정품인지 확인해 인증하는 서비스였는데, 회사를 설립했고 시드 투자까지 받았다. 1년 정도 코파운더 역할도 했다.

하지만 1년 뒤에 그만뒀다. 내가 화장품 산업을 잘 모른다는 것이 컸다. 제대로 알기위해 나름 다방면으로 노력은 했는데 주변 상황이 호응을 해주진 않았다. 실제 화장품 분야에서 어떤 니즈가 있는지, 그걸 기반으로 뭘 해야할지 제대로 된 기획을 못하겠더라.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라는 판단으로 나오게 됐다.

그리고 졸업을 했다. 

첫 창업에서 하차할 때가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이다. 그동안 내가 뭘 배웠는지를 많이 생각했다. 긍정적인 건 대학원에서 창업을 어떻게 시작하는지, 그리고 블록체인에 대해서 나름 공부를 했다는 거였다. 아쉬웠던 것은 내가 블록체인에 대한 도메인 지식이 없기에 할 수 있는게 적었다는 것이었다. 생각의 정리와 고민을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아이템들을 나열했다. 블록체인을 적용하면 좋을만한 것을 많이 생각했다. 그렇게 고른 아이템들을 들고 학교 교수님들을 찾아가서 자문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가장 호응을 얻었던 것이 ‘연구노트’였다.

‘레드윗’의 탄생

당시 교수님들이 “연구노트는 블록체인으로 했을 때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했다. 그래서 진짜 소비자들이 필요한지를 조사하기 위해 가설을 세웠다. 우선 “연구원들은 회의도 하고, 영상으로 미팅도 하고, 서면기록도 하니까 사진도 필요할거다”라는 가설 하나와 “요즘 연구원들은 아이패드를 많이 쓸테니 패드 버전을 먼저 만들어야 될거다”라는 거였다. 그런데 실제로 조사를 해 보니 연구원들은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환경 속에 있었다. 왜냐하면 실험 환경에 스마트 디바이스를 마음대로 들고 갈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빠르게 적어야 되기에 수기로 한 노트가 많았다. 확인해보니 거의 70%가 서면기록이었다. 그리고 아이패드는 수업 때는 많이 쓰는데, 연구할 때는 그렇게 많이 쓰지 않았다. 그래서 서면기록에 대한 타겟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 가설과 검증 과정으로 카이스트 창업경진대회에서 운좋게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시드투자로 이어졌다. 그리고 레드윗이라는 기업이 되었다.

창업을 하고 느낀 가장 큰 매력

나도 스스로에게 많이 하는 질문이다. 예전에 홍대에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상담해주는 사람이 나는 ‘고아원 원장 사주’라 “뭘 하더라도 누군가 먹이고, 재우고, 하는 것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더라. 그 사주가 창업이란 형태로 풀린게 아닐까 농담삼아 말하곤 한다.

창업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은 대학원에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회사라기보다는 동아리스러웠다. 동아리랑 다를게 하나도 없는 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시작해 서비스가 성장하는 속도에 맞춰서 회사도 만들어지고 다듬어졌다. 점점 회사가 되어가고 있구나를 느낄 때가 너무 좋다. 회사와 팀원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창업하고 느낀 가장 큰 매력이다.

팀원이 아이템을 이해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내가 창업을 하면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사건이 하나 있다. 우리가 카이스트 경진대회를 나가 한 삼개월 동안 진행했는데, 동참한 한 개발자가 의견 개진이 거의 없어 소극적이란 인상을 받았다. 그저 개발쪽 일이 많아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최종 IR 대비를 하며 난관에 빠졌을 때 적극적으로 시의적절한 조언을 해주더라. 연구노트라는 생소한 주제를 어떻게 설명할지를 고민했는데 그 개발자가 좋은 방향을 짚어준거다. 그래서 “왜 그동안 아이디어를 잘 안 냈냐”고 물어보니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제대로 우리 아이템이 이해가 됐다”고 했다. 코파운더급이라 계속 함께하고 만드는 과정을 같이했기에 이해도도 나와 같을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그걸 반면교사 삼아 지금은 새로운 팀원이 들어오면 “우리의 아이템을 잘 모를거다” 라는 가정하에 계속 옆에 붙어서 설명을 하는 편이다.

창업을 하고 가장 행복했던 때

창업을 한지 1년 밖에 안 됐다. 그래서 아직 이 대답을 하기에는 조금 이르다. 다만 의미있는 시점은 있었다. 최근 프리A 투자유치를 마무리 했다. 투자를 받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가 팀원들에게 한 약속을 지킨 것이 기뻤다. 시드 투자를 받을 때 본엔젤스파트너스 외 몇군데 투자사가 더 좋은 제안을 해줬다. 금액도 몇 배나 더 컸고, 밸류도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본엔젤스파트너스와 같이가고 싶었다. 우리 사업에 대해 냉정한 조언도 해줬고, 자만하지 않게 끌어줬다는 것이 컸다. 구체적인 논리라기 보다는 내 느낌이 그랬다. 그래서 팀원들을 설득했다. “내 감이라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딱 한 번만 나를 믿어주면 1년 이내에 시드 때보다 훨씬 더 큰 투자를 유지를 하겠다”고 공언을 했다. 그리고 그게 8개월 만에 실제로 지켜졌다. 약속을 지켜 기뻤고, 믿어준 팀원들에게 고마움을 느낀 순간이었다.https://platum.kr/archives/150661

원문 출처 : 플래텀 https://platum.kr/archives/150661
원문링크 https://platum.kr/archives/150661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