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한 회계사(Raymond J. Moon, CPA, PLLC, www.CPAmoon.com)




중국의 반세계화와 신쇄국정책, 미국의 자국기업 우선화와 신보호무역 정책. 그런 고래 싸움에 터지는 것은 우리 한국 기업들의 새우등이다. 그래서 미국 현지 진출은, 우리 기업들이 더 성장할 수 있는 돌파구의 하나로 당장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어떻게든 도와주겠지, 하는 것은 순진한 낙관. 미안하지만, 내 밥그릇은 내가 스스로 챙겨야 한다. 세상이 바뀐 것이 아니라, 원래 그랬다.


미국에 법인을 먼저 설립한 뒤, 미국 현지에서도 팔고 한국에 수입해서도 팔겠다는 한국 기업들의 사업구상을 요즘 부쩍 많이 듣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 높아진 환율(원화가치 절하), 인플레이션과 물류 문제, 유가와 구인난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하다. 한국 기업이 어느 정도 성장한 뒤에 미국으로 그 시장을 넓히는 기존의 접근방법이 아직은 대세다. 그러나 이제는 처음부터 한국 기업이(또는 그 기업의 오너 개인이) 미국에 법인을 설립하여 Made in the USA 제품을 갖고, 미국 시장과 한국 시장을 모두 노리겠다는 상담들이 눈에 띄고 있다.

 

나는 많은 한국 기업들의 미국진출 성공을 봐왔다.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숫자의 실패를 목격했다. 왜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할까? 지난 30여 년의 경험에서 볼 때, 그것은 한마디로 ‘운’이었다. 참 비과학적인 무당 같은 얘기지만, 하나만 고른다면 솔직히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단기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성패를 가른 그다음 요소는 무엇일까? 넓은 의미에서 사람이고, 좁은 의미에서는 현지 전문가다. 미국 진출에는 전문가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미국에 놀러만 가도 현지 가이드가 필요한데, 하물며 낯선 곳에 투자할 때 관련 전문가들의 도움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은 경험이 많은 회계사와 변호사들의 도움을 잘 받으니 다행이다. 문제는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소기업과 영세업체들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이미 자금과 정보, 네트워크와 인력, 제품과 가격, 모든 면에서 궁핍하게 출발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전문가들의 도움도 그들이 스스로 메워 나가야 하는 부분이다. 이 글은 그들에게 바치는 작은 헌사다.

 

내가 한국과 미국의 회계사, 한국과 미국의 세무사, 양쪽 경험을 모두 가진 탓에 한국 소기업들과 영세업체들의 상담 요청을 많이 받는다. 오죽하면 생면부지의 내게 연락했을까 싶어서 최대한 귀를 기울인다. 이때 정확한 답변을 주기 위해서 나는 몇 가지 질문을 하게 되는데,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질문은 '그럼 누가 미국 진출의 주체인가요?'이다. 돌고 돌아, 결국 이 질문 ‘미국에 만들어질 회사는 누구의 것인가요?’에 대한 답변을 듣지 못하면, 그다음 진도를 나갈 수 없다. 현지 전문가로서 도와주고 싶어도, 이 질문에서 막히면 결국 그 상담은 의미가 없어진다. 즉 법인 이름으로 투자할 것인지, 아니면 그 법인의 오너(개인) 이름으로 투자할 것인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오늘은 이 얘기를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가령, 삼성전자의 투자 vs 이재용의 투자. 그것이 같은가? 완전히 다른 얘기다(이 이름들은 설명의 편의를 위한 것임). 투자자금의 출처가 내 개인 통장에서 나오는 것과 내 회사 통장에서 나오는 것이 같을 수 없다. 사실 이것은 너무 뻔한 것이다. 그런데도 실무적으로 일을 하다 보면, 이 뻔한 것을 놓쳐서 나중에 곤혹을 치른다. 미국에서도 곤혹, 한국에서도 곤혹, VC나 현지금융에서도 곤혹, 나중에 자금 회수에서도 곤혹스러운 일이 따른다.

 

누가 미국 진출의 진짜 주인공인가? 그것을 변수로 두면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지고, 그것을 미지수로 두면 그 방정식은 풀 수 없다. 어느 회사의 돈인지, 어느 개인의 돈인지, 어떤 돈으로 누가 투자할 것인지 먼저 결정해야 그 다음 문제들이 풀린다.


미국 현지법인의 영업 결과가 돈을 댄 투자자(그것이 이재용이든, 삼성전자든)의 한국 회계장부에 매년 어떻게 반영되고 한국 세금 계산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나중에 미국에서 번 돈이 한국에 돌아올 때, 누구의 통장으로 입금되어야 하는지, 현지 법인이 외부 자금을 수혈 받거나 투자자에게 이익을 분배할 때 어떤 제약이 따르는지 등의 문제들과도 직결된다.


미국에서 온 똑같은 벽돌이라도 한국에서는 그 놓이는 자리가 다르다. 건물의 지하에 쓰일 수도 있고, 10층 꼭대기에 놓일 수도 있다. 그 높이가 결국 한국에서의 세금 효과(tax effect)라고 생각하면 된다. 즉 미국에서 똑같은 돈이 와도, 한국에서의 투자주체(법인 vs 개인)에 따라 한국에서의 세금이 달라진다. 미국 현지법인 설립의 주체를 잘 설계하고 결정할 필요가 우선 여기에 있다.


미국 현지법인을 이재용(개인)의 것으로 하고 싶다면, 그 돈은 처음부터 한국의 개인 통장에서 송금되어야 한다. 그리고 매년 미국 현지법인의 이익/손실은 개인의 한국 소득세 신고서에 반영되어야 한다. 나중에 미국 현지법인의 배당금이나 청산금도 법인 아니라 개인의 통장으로 돌아와야 한다. 반대로 미국 현지법인의 주인이 삼성전자(법인)가 되면, 그 투자금은 이재용 개인이 아니라 삼성전자 법인 통장에서 출발해야 한다. 매년 삼성전자 법인세 신고서에 미국 현지법인의 영업성과가 반영되어야 한다. 정확한 세무회계 표현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그렇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만약 개인이 투자하는 것과 법인이 투자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모두 가능하다면 미국 현지법인의 주인을 이재용 개인으로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삼성전자 법인으로 하는 것이 좋을까? 각각 장단점이 있고, 각각의 상황과 출구전략 등에 따라서 답변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그 구체적인 설명은 논외로 하자.


다만 하나 꼭 참고할 것이 최근의 법인세법 개정 방향이다. 2018년에 이와 관련된 미국 법인세법이 이미 바뀌었고, 한국도 몇 년 늦었지만 내년 2023년에 바뀔 것으로 보인다. 그 개정 방향을 보면, 개인이 아니라 법인으로 투자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사실 배당소득의 이중과세 문제가 그동안 법인 명의의 투자를 주저하도록 만들었었다. 즉, 2022년도 세법 기준으로는 한국 법인이 미국 현지법인(자회사)으로부터 배당을 받으면, 그것을 한국 법인세 과세표준에 합산해줘야 한다. 물론 외국납부세액공제(foreign tax credit)라는 것이 있어서 미국에 낸 세금을 감안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완전한 이중과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2023년도부터 한국 모기업의 구조와 상관없이, 미국 현지법인 배당금 중 95%가 익금불산입, 즉 소득으로 잡히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미국 현지법인에서 나오는 배당수입의 5%만 한국 법인의 수입으로 잡히게 된다. 이 말은 배당수입의 이중과세가 대부분 제거된다는 뜻이다. 조세조약상 10%나 15%의 낮은 제한세율 혜택을 감안하면 한국과 미국, 어느 쪽에도 큰 세금을 내지 않는 ‘실질적인 이중비과세’의 혜택이 기대된다. 개인이 아니라 한국 법인의 이름으로 미국에 진출, 투자하는 것을 그동안 주저하게 했던 걸림돌이 하나 제거되는 셈이다.

 

미국 진출에 있어서 법인의 형태나 LLC의 장단점, 주(state)의 결정 등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정작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한국에서의 투자주체 결정 문제다. 다시 강조하지만, 삼성전자(한국 기업)가 미국에 투자/진출하는 것과 이재용 부회장(한국 개인)이 미국에 투자/진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투자의 주체가 누구인가요? 결국 이 질문은 돈이 누구 주머니에서 나와서 나중에 누구 주머니로 들어갈 것인지 묻는 것과 같다. 현지법인 설립의 주체를 고민 없이 결정하면 나중에 분명히 통곡하는 일이 생긴다. 사과가 먹고 싶으면 지금 사과나무를 심어라. 나중에 배가 먹고 싶다면 지금 심어야 할 것은 배나무이다. 배나무에 아무리 열심히 물을 준 들 나중에 그 나무에서는 사과를 절대로 딸 수 없다. 잘 가꾸는 것은 나중의 문제다. 시간적으로는 입구 뒤에 출구가 있다. 그러나 미국 진출을 위한 계획을 세울 때는 맨 나중에 올 출구를 염두에 두고, 지금 그 입구를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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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출처 : 코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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