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맥주 기네스의 본고장이자 버스킹의 성지로 유명한 아일랜드는 영국 서쪽에 위치하고 한반도의 삼분의 일 크기에 512만 명 남짓의 인구를 가진 작은 섬나라이다. 멀게만 느껴지는 아일랜드의 역사를 유심히 살펴보면 우리나라와 유사한 점이 많다. 과거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였고 독립전쟁으로 북아일랜드와 남아일랜드로 분단되었으며 짧은 시간 내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루어냈다. '유럽의 본사'라고도 불리는 별명에 걸맞게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거리를 걷다보면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거대 IT기업, 세계적인 제약사들의 유럽 본사가 줄지어 서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처럼 유럽의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아일랜드가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는 사실은 기네스 흑맥주나 길거리의 버스킹보다도 흥미롭다.
<아일랜드 국민소득>
[자료: 매일경제]
아일랜드는 작지만 강하다. 아일랜드의 2021년 명목 GDP는 4,235억 유로(한화 약 583조8,963억)로, 세계 경제 규모로는 27위지만 1인당 명목 GDP는 무려 세계 2위에 달한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때에도 아일랜드는 5% 이상 성장했고 코로나19로부터 서서히 회복하던 2021년 아일랜드는 EU 평균의 두 배를 훨씬 상회하는 13.5%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저력을 과시했다. 2022년 하반기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 및 물가 상승 압력 강화 등 지정학적 위험요인이 영향을 주면서 전년대비 눈부신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겠으나 아일랜드 중앙은행은 2022년 아일랜드 경제가 4% 가량 성장할 것이라 전망했다.
아일랜드는 어떻게 유럽의 본사가 되었을까
<2021년 세계 법인세>
[자료: Statistia]
아일랜드의 성장은 많은 부분은 투자유치로부터 왔다. 이는 정부의 과감한 개혁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1990년대 아일랜드 정부는 경제개혁의 일환으로 EU 평균 25%에 달하는 법인세율을 헝가리를 제외하고 가장 낮은 수준인 12.5%로 대폭 낮추었고 다양한 세제 혜택을 기업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아일랜드는 기업의 연구개발을 장려하기 위하여 외국인 투자기업이 연구개발(R&D) 비용을 지출할 경우 지출액의 12.5%만큼의 법인세 공제 혜택과 더불어 25%만큼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그 덕에 아일랜드 내 많은 연구단지가 유치되고 뛰어난 연구들이 진행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일랜드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퍼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국적 기업이 국내에 창출하는 일자리만 27만 개에 이르고 정부에 납입하는 세금은 아일랜드 전체 세수의 20%를 차지하며 아일랜드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2012-2021년도 아일랜드 법인세>
(단위: %)
[자료: Trading Economics]
‘12.5%’라는 수치는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아일랜드가 유럽의 본사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바로 아일랜드를 관통하는 ‘안정성’이다. 정책 안정성의 측면에서 아일랜드는 20년간 법인세율을 바꾸지 않았다. 경제가 어려워 세수가 필요할 때에도 12.5%를 유지하며 전 세계 기업들에 안정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입지의 안정성도 무시할 수 없다. 유럽 여느 국가와 같이 아시아와 북중남미를 잇는 황금 시간대에 자리하고 있고 EU내 거의 유일하게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이다. 또한 러-우 전쟁사태로 유럽 대륙의 안보가 문제가 되는 현재에도 아일랜드는 유럽 내 가장 안전한 곳 중 하나로 손꼽혔다.
마지막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노동력이 풍부하고 유연한 고용시장을 가져 고용의 안정성까지 자랑한다. 이처럼 정책, 입지, 노동력 세 부분에서 뛰어난 안정성을 보이기 때문에 유럽에 진출을 꾀하는 다국적 기업이 근거지로 삼을 최적의 장소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투자 유망 분야
이미 전 세계적으로 투자를 이끌어내고 있는 아일랜드지만 아일랜드투자개발청(IDA Ireland)은 자국의 투자매력도를 높이기 위해 매년 적극적인 투자유치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아일랜드가 주목하는 산업분야는 바로 IT, 금융서비스, 생명과학이다.
(1) IT 분야
IT기술이 세분화되면서 핀테크, 인공지능 등 기술 적용분야가 광범위해졌고 덩달아 투자의 가능성이 늘어났다. 이에 아일랜드 정부는 KDB(Knowledge Development Box, 컴퓨터 프로그램, 특허 발명 등 R&D 분야에서 소득이 발생하는 기업들을 총칭)에 속하는 기업에 법인세의 절반인 6.25%만을 부과하는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했다. 더불어 이미 구글, 인텔, 페이스북 등의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아일랜드에 정착해 있어 또 하나의 유입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덕에 아일랜드에는 사물인터넷, 클린테크, 클라우드 컴퓨팅, ICT 소프트웨어 분야의 글로벌 기반이 마련돼 있으며 유럽의 IT 인재들이 미국 IT기업 유럽본사로 진출하기 위해 아일랜드행을 택하고 있다.
(2) 금융서비스 분야
아일랜드 정부는 1987년 아일랜드금융센터(IFSC)를 설립해 은행, 펀드 매니지먼트, 보험 등의 국제거래 금융 서비스를 중앙 집중화하려 했고 이 결과 세계 상위 50여 개의 은해와 상위 20개 보험사 등 500여 개의 기업이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한 76개국과 체결한 광범위한 포괄적 이중과세 방지협정도 세금 분야의 효율성을 높여 아일랜드가 국제 금융 서비스 운영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현재 아일랜드 금융 서비스에 대한 외국인 투자 비율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브렉시트로 영국이 금융 중심지로서 입지가 약해지자 그 대체처로 아일랜드가 부상하고 있다.
(3) 생명과학
<2009-2020년 아일랜드 제약 매출액>
(단위: 백만 유로)
[자료: Statistia]
이미 글로벌 10대 제약사, 메드테크 기업, 진단사의 대부분이 아일랜드에 자리하고 있다. 2020년 아일랜드의 제약 판매 매출액은 24억5,800만 유로(한화 약 3조4,295억 원)이며,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연간 450억 유로(한화 약 62조7,849억 원) 이상 수출하고 있다. 더하여 제약사들이 창출하는 고용인 수만 5만 명이 넘는다. 자연스럽게 아일랜드는 생명과학의 중심지로 떠올랐고 기업들의 막대한 R&D 투자가 지속되고 있다. 그 결과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임상, 학술 센터가 아일랜드 곳곳에 생겨났으며 업계와 대학 및 연구센터 간 연구 교류, 협력이 활발해지며 업계가 더욱 풍성해지고 있다.
아일랜드의 이면 1: 더블 아이리시 위드 어 더치 샌드위치(Double Irish with a Dutch Sandwich)
아일랜드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법인세를 자랑하며 ‘Tax haven(조세피난처)’이라는 명예롭지 않은 별명까지 붙었다. 그러나 세금을 회피하려는 기업들의 전략은 날로 고도화되었고 그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더블 아이리시 위드 어 더치 샌드위치’이다. 이는 글로벌 IT 기업이 벌어들인 지적 재산권 수익을 아일랜드 자회사 2곳과 네덜란드 자회사를 거쳐 법인세가 없는 카리브해 조세피난처에 보낸 뒤 응당 내야했던 3-40%에 달하는 세금을 단 5%만 내는 방식을 말한다. 아일랜드 자회사 2개 사이 네덜란드 자회사 1개가 껴있는 모습이 마치 샌드위치와 같다고 하여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세계 1인당 명목 GDP 순위를 보면 이상하리만치 의외의 국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국가들은 ‘더블 아일랜드 위드 어 더치 샌드위치’ 방식을 이용한 다국적 기업들의 도관회사(조세회피의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가 세워졌던 곳들이다.
이런 방식이 가능했던 이유는 외국에 근거지를 둔 자회사에 법인세를 걷지 않는 아일랜드 세법 때문이었다. 거대 IT 기업들이 자국에서 천문학적인 판매수익을 내면서도 세금을 단 한 푼도 내지 않자 EU는 아일랜드를 강하게 압박했고 EU 조치 하에 현재는 더 이상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일랜드가 거대 IT 기업이 벌어들인 돈에 대해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이익을 불리는 것을 도와주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일랜드의 이면 2: 다국적 기업이 왜곡하는 아일랜드 경제
아일랜드가 연구개발에 제공하는 막대한 혜택 덕에 아일랜드에는 다수의 연구개발 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혜택의 도입 목적과는 다르게 기업들은 아일랜드의 이점을 악용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아일랜드 경제 지표를 완전히 왜곡시켰다. 예를 들어 기업들은 미국 등 다른 센터에서 진행된 연구개발로 벌어들인 수익을 아일랜드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고함으로써 세제 혜택을 받고 실제 연구가 진행된 국가에서 냈어야 할 세금을 내지 않았다. 기업들이 신고한 R&D 수익은 사실 아일랜드에서 번 것도, 아일랜드에서 쓰이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아일랜드의 GDP를 끌어올려 아일랜드가 내야 할 EU 분담금을 높일 뿐이다. 2019년 EU가 만든 ‘코로나 회복기금’은 GDP를 기준으로 국가별 분담금을 계산했는데, 지표 왜곡으로 인해 아일랜드는 룩셈부르크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분담금을 많이 냈다.
절대적인 수치로만 보면 아일랜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잘 사는 나라다. 그러나 실제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삶은 세계 2위 인당 GDP와는 거리가 있다. 통계적으로 아일랜드인은 영국인보다 두 배 정도 부유하지만, 실제 정부와 국민의 소비를 계산하면 아일랜드인은 영국인보다 10% 더 가난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일랜드의 지표 왜곡은 각종 EU 분담금을 늘리는 등 정부의 지출을 과도하게 증가시켜 일반 국민들의 삶을 고달프게 만들고 있다.
아일랜드의 이면 3: 과도한 다국적 기업 의존도
다국적 기업 투자유치는 아일랜드를 오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지만, 이들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오히려 다국적 기업에 발이 묶이게 만들었다. 앞서 밝혔듯 법인세는 아일랜드 전체 세수의 20%를 차지하고 있는데, 법인세의 절반은 상위 단 10개의 기업으로부터 나온다. 이 뿐만 아니라 수출에서도 화학물, 의약품, 의료기기 등 10대 주요 수출품이 전체 상품 수출의 45%를 차지한다. 즉, 이들 기업 중 하나라도 아일랜드에서 투자를 그만두는 경우 아일랜드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소수 거대 다국적 기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아일랜드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맺음말
아일랜드 정부가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15%) 도입에 동참하면서 2023년 12.5%의 법인세율 안정성은 깨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디지털세 도입 등 EU의 규제가 거세지고 다국적 기업들의 아태지역 본부 이전 수요도 날로 늘어나고 있어 아일랜드 정부의 향후 정책 재정비 및 수출투자 다변화 등 내실화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몇 가지의 위험요인에도 불구하고 미국 상공회의소에서 발표한 2022년 미국-아일랜드 비즈니스 보고서(US-Ireland Business Report)에 따르면 아일랜드에서 사업 중인 미국 기업은 900여 개로 역대 최고 수준에 달한다. 또한 미 상공회의소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5%가 OECD 법인세 인하 조치 이후에도 여전히 아일랜드는 매력적인 투자지일 것이라 답했다. 아일랜드 정부도 2020년 1월 ‘대아태 지역 외교전략’을 발표하며 2025년까지 아태지역과 양방향 교역량을 1000억 유로까지 늘러 경제협력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미국 이외 지역으로부터 2024년까지 2배의 투자유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결정은 영국, 미국 등 전통적인 교역상대국으로부터 수출 다변화하고 경제 안정성을 갖추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목표로 하는 수출 다변화와 미국 이외 지역 투자유치가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아일랜드는 향후 더욱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자료: 아일랜드정부포털(GOV.IE), 아일랜드투자개발청(IDA), Statistia, KOTRA 런던 무역관 자료 종합
원문링크 | https://dream.kotra.or.kr/kotranews/cms/news/actionKotraBoardDetail.do?MENU_ID=70&pNttSn=19681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