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편에서는 실제 분쟁화된 사건을 토대로 참고할만한 판례 하나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저희 의뢰인은 새로운 지점을 오픈하기 위해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서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입하여 인테리어도 하고 홍보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상적으로 영업을 잘해나가던 중 임대인으로부터 임대차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관리비를 지급하라고 요구 받았습니다. 계약 당시 임대인으로부터 관리비는 임대료에 포함되고 실제 사용한 전기료, 수도세만 납부하면 된다고 들었기에 당연히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였던 것인데, 이렇게 이제와서야 요구받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임대인은 청소와 경비에 소요되는 인건비, 건물 유지비 등은 임차인이 지급하여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면서, 관리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물이나 전기를 끊을 수도 있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의뢰인은 지급하지 않았다가 영업에 지장을 받을 것을 우려하여 결국 어쩔 수 없이 납부 의무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임대인의 요구대로 관리비를 지급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의뢰인이 관리비를 지급한 것이 결국 의무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므로 이미 지급한 금액을 결국 돌려받을 수는 없을까요?

민법 제742조에서는 “채무없음을 알고 이를 변제한 때에는 그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모르고 변제를 하게 되면 그에 대한 반환을 받을 수 있지만, 채무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변제(지급)한 때에는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희 의뢰인의 경우에는 관리비 납부 의무가 없음을 알고 있었던 경우에 해당하므로, 납부한 관리비를 돌려받을 수 없을 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위 민법 제742조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 대법원은 이를 조금 더 좁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채무없음을 알면서도 ‘임의로’ 지급한 경우에만 민법 제742조에 따라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보고 있는데요. 구체적으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민법 제742조의 비채변제는 지급자가 채무 없음을 알면서도 임의로 지급한 경우에만 성립하고, 채무 없음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변제를 강제당한 경우나 변제거절로 인한 사실상의 손해를 피하기 위하여 부득이 변제하게 된 경우, 반환청구권을 유보하고 변제한 경우 등 그 변제가 자기의 자유로운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는 사정이 있는 때에는 지급자가 그 반환청구권을 상실하지 않는다(대법원 1996. 12. 20. 선고 95다52222 판결 등).”

위 법리를 인용한 대법원 판례 사안에서는, 공장을 매수한 자가 매도인이 사용한 전기요금을 체납한 사실을 모르고 공장을 매수한 후 설비투자를 하였는데, 한국전력공사가 요금 체납을 이유로 전기공급을 중단하여 이를 공급받기 위하여 부득이 매도인의 체납 전기요금을 납부하게 되었으나 부당이득반환 청구를 통해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컨대, 채무 없음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유로운 의사에 기하여 변제하였을 때에만 반환을 청구하지 못하는 것이고, 변제를 강제당하거나 변제하지 않는 경우 입을 손해를 피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하게 변제하게 된 경우 등에는 반환청구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 의뢰인의 경우에는 자신에게 채무가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임대인으로부터 관리비를 납부하지 않으면 단수, 단전 조치를 하겠다는 경고를 받았고 만일 끝까지 지급하지 않는다면 정상적을 영업을 하지 못하는 등의 손해가 발생할 것이 명백하였습니다. 따라서 의뢰인이 관리비를 납부한 것은 납부를 강제당하거나 손해를 피하기 위하여 부득이 납부한 경우였습니다. 따라서 자유로운 의사에 의하여 임의로 납부한 경우가 아니므로, 지급한 관리비 금액 일체에 대해 반환을 청구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보다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서면(내용증명 우편 등)을 통해 상대방의 부당한 요구로 인하여 채무가 없음에도 지급하는 것이고, 그 돈의 반환청구를 유보(잠시 미뤄두고 추후에 하겠다)한다는 사실을 통지하는 것이 바람직 하겠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사업 상대방의 부당한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응하여 상당한 금액을 지급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방의 요구가 계약서상에 명시되지 않은 의무이지만 당장의 영업손실을 막기 위해서 지급이 불가피한 경우라면, 일단 지급한 이후에 부당이득반환 청구를 통해 받을 수 있으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최앤리 법률사무소 문재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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